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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량 붕괴 사고 (성수대교 당산철교 신행주대교)

some1014 2023. 4. 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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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역대 교량 붕괴 사고 

 

1. 성수대교 붕괴 사고

성수대교-붕괴

 

1994년 10월 21일 서울특별시의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무너져내려 일어난 사고로 사고로 인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는 등 총 49명의 사상자 냈다.

 

사고 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속으로 곤두박질친 지나가던 한성운수 소속 16 시내버스는 통과 도중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혀 추락한 떨어진 상판에 박혀 찌그러지는 바람에 등굣길의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졸지에 참변을 당했으며 특히 버스 추락으로 32명의 승객 중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차량 중 승합차엔 제49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후 전원 무사하여 헌신적으로 요구조자들을 구조했다.

 

붕괴원인 

- 점검 부실 다리 내부 부식

성수대교는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되었는데, 이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울뿐만 아니라 안정 시공인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했다.

또한,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의 연결이음새의 용접 불량과 유지 관리 소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건설 당시 다리 부분을 이루고 있는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연결 부분도 심하게 녹슬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 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음새에도 결함이 있었다. 아울러 공사 도중 볼트 삽입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으며, 특히 볼트를 무리하게 삽입함으로 인해 구멍의 모양이 변형되어 볼트의 강도가 약해졌다.

 

- 과적차량의 통과

붕괴 전의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DB-18(총중량 32.1t)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함으로써 성수대교는 40t 넘는 차량들의 압력을 받았기에 붕괴는 예견되어 있었다.

특히 붕괴되기 전인 1993 서울 동부간선도로(성수대교~의정부 구간) 개통되면서 교통량은 더욱 폭증했으나 서울시에서는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사고 이후

붕괴 이후 토목학계는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 1995년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해 1997년에 직선 차선만 완성되었으며 이후 확장공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램프를 건설하지 못하였다.

결국 확장공사는 1998년 폭과 길이 확장공사 진입램프 신설을 하고 2004년 최종 완성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성수대교 붕괴 사고 여파로 인해 같은 트러스식 공법으로 시공된 당산철교도 안전 점검 후폭풍이 일게 되어 1997년부터 철거 및 재건설에 들어갔고 1999년에 다시 개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당산철교 철거

 

당산철교

 

당산철교(堂山鐵橋)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당산역과 합정역을 연결하는 철교이다. 한강의 3번째 철교로, 1983년 11월에 완공되어 1984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완전 개통으로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당산철교는 안전 문제로 재시공하여 1999년에 개통된 것으로, 교량의 길이는 약 1.2km, 높이는 약 30m에 이른다.

 

재시공

1994년 10월 21일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여파로 당산철교도 교량 안전 점검 후폭풍이 불었다. 완공 10년 후에 실시된 교량 점검 과정에서, 상판은 물론 교각 자체에도 균열 현상이 급속히 확산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또한 1994년 11월부터는 2호선 전동차가 시속 30km 정도로 서행 운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균열이 심해져 결국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었고 당초 1997년 3월 경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수요가 많은 2호선의 특성상 재차 시기를 앞당겨 1996년 12월 31일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다음 날인 1997년 1월 1일부터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당산역 - 합정역 구간이 한때 단절되었다.

 

철거를 시작한 첫 날에는 우려했던 대로 당산철교가 바로 붕괴되기도 하였으며, 1997년 5월 22일에는 철거 도중에 상판이 기울어지기도 하였다.이후 약 3년간 당산역과 합정역 및 홍대입구역을 임시로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었고 2호선 열차가 당산역과 합정역에 임시로 회차선을 만들어 회차하기도 하였다. 1999년 11월 22일 당산철교가 다시 개통되어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교량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3.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

새로 건설 중이던 신행주대교가 1992년 7월 31일에 붕괴한 사고이다. 

 

행주대교-붕괴

 

사고 원인

원인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탑 주변에 교각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콘크리트 사장재 4개를 세워 놓고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해오다 하중을 못이긴 상판과 교각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 공사에 쓰인 사장재는 하나 당 무게가 무려 110t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후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교량 상판의 이음새 부분에 대한 설계및 시공이 허술한 데서 비롯된 사소한 잘못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신행주대교는 연속압출공법과 콘크리트 사장재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 건설되었는데 이 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도 설계 또는 시공과정에서 이음면의 전단내하력(외부하중에 견딜 수있는 힘)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4번째 임시교각 남쪽 상판은 가장 큰 하중이 걸리기 때문에 상판을 요철형태로 연결해야 하는 데도 설계를 맡은 한국종합기술이나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이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사장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결국 8백m구간의 상판과 교각, 주탑이 연속적으로 붕괴된 것으로 분석했다.

사고 경과

1992년 7월 31일 오후 6시 59분경, 2개의 주탑 중 하나가 부러지고 두 주탑 사이의 상판이 약 800m 정도 내려앉으면서 주탑 양 바깥쪽의 상부 구조물 전체가 주탑 방향으로 일시에 연쇄적으로 밀렸고 결국 교각과 함께 붕괴하였다. 다행히도 사고 당시 작업이 끝나 인부들이 현장에서 철수를 한 시간이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등 3명이 직위해제되었다. 사고 이후 복구공사에서는 당초 설계에 미비하였던 많은 점을 보완토록 하였고, 특히 콘크리트 사장재를 케이블 사장재로 변경하여 시공성을 높이고 사하중을 경감시켰다. 또한 사장교 구간을 연속 PSC 박스거더에서 강합성 교량으로 변경하여 재사용하는 주탑의 부담을 줄였고, 기초 파일도 복구 부분에서는 All Casting 공법 현장타설 말뚝을 사용토록 했으며 교각에 격벽을 추가하고 단면도 증가시켰다. 한편 이 교량 건설과 함께 추진해오던 구 행주대교의 확장 공사는 무기한 보류되었다. 

또한 당시 건설을 맡았던 벽산건설은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현재 벽산건설은 과징금 등을 다 낸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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